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2일. 문화재청(지금의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두 건(2018년 6월 20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만에 수리 완료」와 붙임 「보수‧정비 추진 현황」, 2019년 4월 25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20년 만에 준공」),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수리 및 복원정비 기법 연구」,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당시 기관 이름 문화재청 ·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금의 국가유산청 ·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같은 기관입니다. 수리 뒤에도 무너진 쪽을 그대로 두었다는 모양(문장 1 · 3 · 21 · 28)은 기관 원문의 「추정 복원을 지양 … 원래 남아있었던 6층까지」에 KBS 보도(△)를 함께 붙였습니다. 「어디까지 쌓을지 모른다」(문장 14)와 「짐작으로 깎은 새 돌이 된다」(문장 18)는 원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설명이라 「해석」으로, 콘크리트가 덮인 모양을 그린 문장 8은 「장면」으로 표시했습니다.- 185톤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2004년까지 해체된 콘크리트의 양은 총 185톤 정도」로 적은 값이라, 영상의 「185톤」은 어림값입니다.
- 수리를 마친 때는 원문마다 다르게 적힙니다. 6층 조립 완료는 2017년 11월(국립문화유산연구원), 「지난해 12월 6층까지 수리 완료」(2018년 보도자료), 준공식은 2019년 4월 30일(2019년 보도자료)입니다. 영상은 준공식을 기준으로 「2019년에 끝난 수리」라고 말했습니다.
- 「해체를 정한 지 20년」은 1999년 문화재위원회 결정부터 2019년 준공식까지입니다. 사업기간은 1998년~2019년으로 적혀 있습니다.
- 사업비 230억 원은 2018년 6월 보도자료 붙임의 총사업비로, 준공 뒤 최종 정산액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돌 1,627개」는 수리 뒤 석탑에 쓰인 부재 수(새 돌 포함)이고 81%는 원래 부재를 다시 쓴 비율입니다. 둘을 곱한 옛 돌 개수는 원문에 없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 남아 있던 쪽을 국립익산박물관은 「동북 측면」으로 적어, 영상은 이를 「동북쪽 귀퉁이」로 말했습니다. 1915년 콘크리트가 덮인 쪽의 방위는 원문에 없어 「무너진 쪽」으로만 말했습니다.
- 콘크리트를 떼려면 그 밑의 돌까지 전부 내려야 했다는 문장 10은 1998년 진단 · 1999년 해체·수리 결정과 2010년 해체 완료 기록을 잇는 설명이며, 원문이 그 까닭을 한 문장으로 적지는 않았습니다.
- 「금 간 곳을 3차원으로 기록」(문장 23)은 부재 위치 · 형태의 3차원 기록과 금 간 부재의 보존처리를 묶어 말한 것입니다. 원문은 둘을 따로 적습니다.
- 미륵산 돌은 원문에 「현재는 직접 공급이 어려운 실정」으로 적혀 있어, 영상의 「더 캘 수 없어」는 이를 줄인 말입니다.
- 옆 동탑에 새 돌이 얼마나 쓰였는지는 기관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해 비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