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3일. 한국도로공사가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한 「고속도로 건설공사」 · 「도로터널정보」 자료, 대통령기록관의 2001년 11월 28일 개통식 연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디지털강릉문화대전(「대관령터널」 · 「영동고속도로」)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관령」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1998년 1월 폭설에 차 2,500여 대가 갇힌 일(문장 8), 낭떠러지 때문에 옛길을 넓히기 어려웠다는 정부 발표와 11.2킬로미터 터널 계획(문장 9 · 11 · 16), 대관령 구간이 50분에서 15분으로 준다는 도로공사 발표(문장 28)는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한국일보 보도로 확인했고, 그 문장에는 보도(△)로 표시했습니다. 「산을 뚫는 대신 비탈을 감아 돌았다」 「다른 구간처럼 옆에 차로를 붙이면 될 것 같았다」 「옆에 붙일 땅이 없었다」 「굽은 채로 두면 또 갇힌다」는 원문의 숫자가 아니라 옛길과 1992년 발표를 잇는 우리 설명이라 「해석」으로 표시했습니다.- 「터널 7개」는 이름 기준입니다. 대부분 오르는 쪽과 내려가는 쪽 굴이 따로 뚫려 있어 굴 수로는 더 많습니다.
- 구간 길이 · 공사비 · 다리 수는 도로공사 공개 자료(26.6킬로미터 · 7,151억 원 · 36개소)와 한국일보 2001년 보도(22킬로미터 · 7,560억 원 · 33개), 개통식 연설(다리 33개)이 서로 달라, 영상은 도로공사 자료 값을 썼습니다. 다리 수가 다른 까닭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절반 가까이가 굴 아니면 다리」는 도로공사 자료의 터널 4,236미터와 다리 7,765미터를 더해 구간 26.6킬로미터로 나눈 값(약 45%)입니다.
- 도로공사 「도로터널정보」 자료에는 짧은 2 · 3터널 줄이 없어, 일곱 터널 모두의 차로 수는 디지털강릉문화대전으로 확인했습니다. 터널별 길이는 두 자료의 값이 몇 곳 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 1992년 정부가 발표한 11.2킬로미터 터널 계획과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이 적은 「기본 설계 때 검토한 장대 터널」이 같은 안인지는 원문이 이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 옛길의 굽이 수 · 경사 값을 적은 기관 원문은 찾지 못해 숫자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흔아홉구비」는 고개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 1975년 개통 날짜는 디지털강릉문화대전(10월 14일)과 도로공사 자료의 공사 기간 끝(10월 24일)이 달라 「1975년」까지만 말했습니다.
- 영동고속도로는 1971년 신갈~새말 구간이 먼저 열렸습니다. 영상의 「1975년 처음 열린 이 고속도로」는 대관령을 지나는 새말~강릉 구간을 말합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