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522026년 10월 3일 공개

대관령 고개 하나에 터널이 일곱 개인 건, 2001년 고갯길을 곧고 완만하게 새로 내며 막아선 산줄기를 뚫었기 때문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 26.6킬로미터에는 대관령 1터널부터 7터널까지 터널이 일곱 개 있습니다. 1975년 길은 97킬로미터에 터널이 두 개뿐이었고, 2001년 네 차로로 넓히면서 옛길 옆을 넓히는 대신 곧고 완만한 새 길을 내 산줄기는 굴로, 골짜기는 다리 36개로 건넜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고, 1998년 폭설에 갇힌 차, 낭떠러지와 11킬로미터 넘는 터널 계획, 50분에서 15분으로 준 통행 시간은 당시 신문 보도(△)로 확인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3일. 한국도로공사가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한 「고속도로 건설공사」 · 「도로터널정보」 자료, 대통령기록관의 2001년 11월 28일 개통식 연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디지털강릉문화대전(「대관령터널」 · 「영동고속도로」)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관령」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1998년 1월 폭설에 차 2,500여 대가 갇힌 일(문장 8), 낭떠러지 때문에 옛길을 넓히기 어려웠다는 정부 발표와 11.2킬로미터 터널 계획(문장 9 · 11 · 16), 대관령 구간이 50분에서 15분으로 준다는 도로공사 발표(문장 28)는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한국일보 보도로 확인했고, 그 문장에는 보도(△)로 표시했습니다. 「산을 뚫는 대신 비탈을 감아 돌았다」 「다른 구간처럼 옆에 차로를 붙이면 될 것 같았다」 「옆에 붙일 땅이 없었다」 「굽은 채로 두면 또 갇힌다」는 원문의 숫자가 아니라 옛길과 1992년 발표를 잇는 우리 설명이라 「해석」으로 표시했습니다.
  • 「터널 7개」는 이름 기준입니다. 대부분 오르는 쪽과 내려가는 쪽 굴이 따로 뚫려 있어 굴 수로는 더 많습니다.
  • 구간 길이 · 공사비 · 다리 수는 도로공사 공개 자료(26.6킬로미터 · 7,151억 원 · 36개소)와 한국일보 2001년 보도(22킬로미터 · 7,560억 원 · 33개), 개통식 연설(다리 33개)이 서로 달라, 영상은 도로공사 자료 값을 썼습니다. 다리 수가 다른 까닭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절반 가까이가 굴 아니면 다리」는 도로공사 자료의 터널 4,236미터와 다리 7,765미터를 더해 구간 26.6킬로미터로 나눈 값(약 45%)입니다.
  • 도로공사 「도로터널정보」 자료에는 짧은 2 · 3터널 줄이 없어, 일곱 터널 모두의 차로 수는 디지털강릉문화대전으로 확인했습니다. 터널별 길이는 두 자료의 값이 몇 곳 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 1992년 정부가 발표한 11.2킬로미터 터널 계획과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이 적은 「기본 설계 때 검토한 장대 터널」이 같은 안인지는 원문이 이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 옛길의 굽이 수 · 경사 값을 적은 기관 원문은 찾지 못해 숫자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흔아홉구비」는 고개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 1975년 개통 날짜는 디지털강릉문화대전(10월 14일)과 도로공사 자료의 공사 기간 끝(10월 24일)이 달라 「1975년」까지만 말했습니다.
  • 영동고속도로는 1971년 신갈~새말 구간이 먼저 열렸습니다. 영상의 「1975년 처음 열린 이 고속도로」는 대관령을 지나는 새말~강릉 구간을 말합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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