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632026년 10월 5일 공개

청계천 광통교 받침에 구름무늬 돌이 박힌 건, 1410년 옛 왕비 무덤 터의 돌로 다리를 놓았기 때문

서울 청계천 광통교의 다리 받침에는 구름무늬를 새긴 오래된 돌이 박혀 있습니다. 1410년 큰비에 흙다리가 또 무너지자, 조정은 한 해 전 도성 밖으로 옮긴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 옛 터의 돌로 돌다리를 놓기로 했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5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 현종실록)의 한문 원문과 국역,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서울 청계천 유적(광통교지, 수표교지와 오간수문지)」의 설명과 연혁, 서울시설공단 청계천 누리집(문화유적 · 청계천역사), 서울역사편찬원이 편찬한 『서울지명사전』(2009)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원문에 이유가 적혀 있지 않은 두 문장(비 올 때마다 큰길이 끊긴다 · 돌다리엔 다듬은 돌이 많이 든다)은 「해석」으로 표시했습니다.
  • 실록의 「8월」은 음력 날짜(태종 10년 8월 8일 기사)입니다.
  • 돌다리가 된 해는 실록 · 국가유산청 · 『서울지명사전』 · 서울시설공단 문화유적 글이 1410년이고, 서울시설공단 「청계천역사」 글만 1412년 개천 공사 때로 적어 영상은 실록의 1410년을 말했습니다.
  • 국가유산청은 정릉 돌을 쓴 일을 「이용하였다고 전한다」로 적습니다. 실록은 의정부가 청하고 왕이 따랐다는 데까지라 영상도 그 범위로 말했습니다.
  • 광통교가 땅에 묻힌 해는 세 기관이 함께 1958년으로 적고, 『서울지명사전』만 1910년에 본체가 먼저 묻혔다고 덧붙여 영상은 1958년을 말했습니다.
  • 양쪽 받침에 구름무늬 무덤 돌이 남아 있다는 서울시설공단 글은 복원 전 땅 밑 유적을 설명한 문장입니다. 「지금도」는 그 다리를 옮겨 복원했다는 국가유산청 연혁과 함께 읽은 것이고, 돌 하나하나의 지금 위치를 적은 기관 원문은 보지 못했습니다.
  • 돌 일부가 거꾸로 박혔다는 이야기와 정릉 돌의 개수는 기관 원문에서 찾지 못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광통교」 본문은 열지 못했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고정 댓글과 이곳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정정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