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3일. 문화재청 보도자료 세 건(2017년 11월 6일 · 2019년 11월 20일 · 2021년 11월 5일)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향원정」 설명 · 연혁표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정자가 기운 「남동쪽」 방향은 경향신문 보도로, 옛 다리가 「흰」 나무다리였다는 것은 2021년 보도자료 붙임 고증 자료에 실린 1895년 외국인 여행기 문장으로 확인해 보도(△)로 표시했습니다. 「그림만으론 다리 기둥이 어디에, 몇 줄 섰는지 알 수 없었다」는 문장은 원문 문장이 아니라 우리 설명입니다.- 「68년」은 다리를 남쪽에 놓은 1953년부터 북쪽으로 복원한 2021년까지를 뺀 값입니다.
- 향원정을 지은 해는 자료마다 1867~1873년 · 1867년 · 1885년(추정)으로 달라 연도를 말하지 않고 「구한말」로만 말했습니다.
- 2021년 보도자료 부제는 「취향교는 향원정 남쪽 제자리에」로 적었지만 본문과 다른 기관 원문이 모두 북쪽이라 본문을 따랐습니다.
- 「그림만으론 기둥 자리와 줄 수를 알 수 없었다」: 2017년 원문은 발굴로 원래 위치와 최초 4열 교각을 「밝혀냈다」고 적을 뿐, 그림만으로는 몰랐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 땅속 돌무더기(적심)를 원문은 교각 기초였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영상은 「기둥을 받치던 돌무더기」로 말했습니다.
- 구한말 사진 속 다리 방향을 적은 원문 문장은 없어, 「사진에도 북쪽」은 다리가 1953년 전까지 북쪽에 있었다는 원문과 이어 읽은 말입니다.
- 남쪽에 놓은 다리와 정자 기울어짐 사이의 인과를 적은 원문은 없어, 영상은 두 문제를 나란히 놓았을 뿐 다리 때문에 정자가 기울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 기운 각도 · 내려앉은 깊이 · 말뚝 개수는 원문에 없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