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542026년 10월 3일 공개

경복궁 향원정 다리가 68년 동안 반대쪽에 있었던 건, 한국전쟁 뒤 1953년 관람 편의를 위해 남쪽에 다시 놓았기 때문

경복궁 향원정으로 건너가는 나무다리 취향교는 1953년부터 68년 동안 정자 남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원래 건청궁 쪽 북쪽에 있던 다리가 한국전쟁 때 부서지자 관람하기 편한 남쪽에 다시 놓은 것으로, 문화재청은 2017년 발굴로 땅속의 나무 기둥 줄과 기초를 찾아 2021년 11월 길이 32미터 아치 나무다리를 북쪽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같은 공사에서 정자가 기운 까닭이 동남쪽 주춧돌 밑 받침돌의 균열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고, 옛 다리가 「흰」 나무다리였다는 것과 정자가 기운 「남동쪽」 방향만 옛 여행기 전언과 보도로 확인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3일. 문화재청 보도자료 세 건(2017년 11월 6일 · 2019년 11월 20일 · 2021년 11월 5일)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향원정」 설명 · 연혁표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정자가 기운 「남동쪽」 방향은 경향신문 보도로, 옛 다리가 「흰」 나무다리였다는 것은 2021년 보도자료 붙임 고증 자료에 실린 1895년 외국인 여행기 문장으로 확인해 보도(△)로 표시했습니다. 「그림만으론 다리 기둥이 어디에, 몇 줄 섰는지 알 수 없었다」는 문장은 원문 문장이 아니라 우리 설명입니다.
  • 「68년」은 다리를 남쪽에 놓은 1953년부터 북쪽으로 복원한 2021년까지를 뺀 값입니다.
  • 향원정을 지은 해는 자료마다 1867~1873년 · 1867년 · 1885년(추정)으로 달라 연도를 말하지 않고 「구한말」로만 말했습니다.
  • 2021년 보도자료 부제는 「취향교는 향원정 남쪽 제자리에」로 적었지만 본문과 다른 기관 원문이 모두 북쪽이라 본문을 따랐습니다.
  • 「그림만으론 기둥 자리와 줄 수를 알 수 없었다」: 2017년 원문은 발굴로 원래 위치와 최초 4열 교각을 「밝혀냈다」고 적을 뿐, 그림만으로는 몰랐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 땅속 돌무더기(적심)를 원문은 교각 기초였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영상은 「기둥을 받치던 돌무더기」로 말했습니다.
  • 구한말 사진 속 다리 방향을 적은 원문 문장은 없어, 「사진에도 북쪽」은 다리가 1953년 전까지 북쪽에 있었다는 원문과 이어 읽은 말입니다.
  • 남쪽에 놓은 다리와 정자 기울어짐 사이의 인과를 적은 원문은 없어, 영상은 두 문제를 나란히 놓았을 뿐 다리 때문에 정자가 기울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 기운 각도 · 내려앉은 깊이 · 말뚝 개수는 원문에 없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이곳과 정정 기록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