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4일. 서울시 보도자료(2013년 6월 5일 · 2019년 1월 · 2020년 11월 12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 한양도성 누리집(「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소개」 · 「도성의 역사」 · 「남산(목멱산) 구간」), 서울정보소통광장에 공개된 서울시 「한양도성 현장유적박물관 조성사업 추진경위」(2022년 6월), 국가기록원 주제별 해제 「조선신궁」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배전 기초가 「콘크리트」였다는 한 낱말(문장 12)만 기관 원문에 없고 서울신문 보도(△)로 확인했습니다. 「성벽만 되살리자니 신궁 터와 방공호를 어찌할지가 걸린다」(문장 14)와 「새 돌로 다시 쌓으면 헐린 과정이 보이지 않게 된다」(문장 17)는 원문에 그대로 있는 문장이 아니라, 서울시가 1 · 2단계와 달리 원래 성벽을 보존하고 훼손된 흔적까지 남기기로 한 결정(2013 · 2019 · 2020년 보도자료)을 풀어 쓴 우리 설명이어서 「해석」으로 표시했습니다.- 「88년」은 조선신궁이 선 1925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2013년까지를 센 값입니다. 서울시 원문은 「100여 년」으로 적고, 성벽이 헐린 정확한 해를 적은 기관 원문은 찾지 못했습니다. 신궁 공사는 1920년 5월 기공식부터 1925년 10월 진좌제까지였습니다(국가기록원).
- 분수대가 생긴 해는 서울 한양도성 누리집이 「1968년부터 식물원과 분수대」, 2020년 보도자료가 분수대 1969년, 2019년 보도자료가 「1969년 동·식물원과 분수광장」으로 적어 기관끼리 1년 달라, 영상은 연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뒤 식물원이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 동상이 섰다가 철거된 일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2015년 … 신궁 터와 방공호, 분수대까지 함께 두기로 정합니다」(문장 20): 2019년 보도자료의 2015년 결정 문장은 「훼손된 흔적까지 포함하여」라고만 적고, 남길 것의 이름(배전 터 · 분수대)은 같은 보도자료의 전시 계획에, 방공호는 2020년 개방 때 배치에 나옵니다. 서울시 2022년 추진경위는 「분수대 등 기타 시설 포함」을 2016년 전문가 자문 결과로 적습니다.
- 발굴 회차별 성벽 길이(95.2미터 · 94.1미터)는 서울시 2014년 추진계획과 2022년 추진경위가 서로 바꿔 적어, 영상은 회차 없이 95미터 · 94미터 두 토막만 말했습니다.
- 「발굴에만 두 해 가까이」는 2013년 6월부터 2015년 4월까지(22개월)를 줄여 말한 것입니다.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는 무료 개방일이며, 이때는 시범운영이었고 실내시설은 뒤에 지었습니다.
- 「데크를 따라 걸으면 성벽과 신궁 터를 같이 내려다본다」는 관람데크와 유적 배치를 적은 서울시 원문으로 말한 것이고, 데크 높이를 적은 원문은 찾지 못했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