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4일.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지명사전』(2009) 원문 PDF의 「선유봉」 「선유로」 항목,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수돗물 정수장의 새 얼굴, 선유도공원」, 영등포구청 관광 누리집 「선유도」, 서울특별시 「서울의 공원」 누리집과 서울미래유산 「선유도공원」,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항공」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영상의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선유봉 높이는 기관 원문 가운데 서울지명사전 한 곳만 53m로 적었습니다. 시민기자 글과 인터넷 카페 글은 약 40m, 잡지 한 곳은 52.5m로 달라 영상은 기관 원문의 53미터를 썼습니다.
- 봉우리가 깎인 때를 서울지명사전은 두 항목에서 「일제 김포비행장 건설과 도로 개설을 위한 채석장」과 「1962년 양화대교 건설」로, 국가유산청은 「일제강점기부터 채석장」으로, 영등포구는 「양화대교 개통과 1968년 한강개발」로 적습니다. 영상은 이를 순서대로 이었습니다.
- 김포비행장 활주로가 1939년에 시작됐다는 국가기록원 원문은 있지만 선유봉에서 돌을 캐기 시작한 해를 적은 원문은 없어, 영상은 채석 연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1925년 대홍수 뒤 제방, 1929년 여의도 비행장 도로, 6·25 뒤 도로 복구 채석은 언론 연재 · 시민기자 글 · 비문을 옮긴 글에만 있어 쓰지 않았고, 당시 신문 원문은 보지 못했습니다.
- 공원 문을 연 때는 서울미래유산 2002년 4월 26일 개방(같은 페이지 연혁은 2002년 7월 준공), 국가유산청 · 서울의 공원 2002년 4월, 영등포구 2002년 5월로 갈려 개방일을 적은 값을 썼습니다.
- 「콘크리트 기둥이 늘어선」(문장 2)과 「기둥과 수조가 정원으로」(문장 27)는 지금 공원 모습을 그린 말입니다. 기관 원문은 송수 펌프실 · 약품침전지 등을 재활용했다고 적고 기둥을 따로 말하지 않습니다.
- 「다 부수면 섬이 걸어온 흔적이 남지 않는다」(문장 18)는 영등포구의 「산업화의 증거물인 정수장 시설을 최소한으로 개조」 설명을 바탕으로 한 영상의 해석입니다.
- 서울지명사전 링크는 전자책 첫 화면이라 「선유봉」 「선유로」 항목은 책 안에서 찾아가야 합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