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682026년 10월 6일 공개

한강대교가 노들섬을 딛고 건너는 건, 1917년 다리를 놓으며 백사장에 흙과 돌을 쌓았기 때문

서울 한강대교는 강 한가운데 노들섬을 사이에 두고 모양이 다른 두 다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1917년 한강 첫 인도교를 놓으며 백사장 위에 흙을 돋우고 돌을 쌓아 다리 자리를 잡았고,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가운데 둑이 쓸려 나가자 용산 쪽 다리를 둑을 쌓았던 곳까지 늘려 새로 놓았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5일.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지명사전』(2009),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강대교」 · 「한강」), 서울시 월간 『서울사랑』 2019년 11월호,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노들생태숲 셀프가이드」(2020), 노들섬 누리집 소개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영상의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 1925년 홍수에 쓸려 나간 곳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안에서도 「중간둑」(본문)과 「소교」(요약)로 갈려, 영상은 본문과 『서울지명사전』 「중간 부분」 쪽을 따라 「가운데 둑」으로 말했습니다.
  • 「흙둑이 받치던 길을 다리가 건너가게 됐다」는 백과의 「종래의 둑을 쌓았던 곳까지 연장」을 풀어 말한 것으로, 둑을 얼마나 걷어 냈는지는 원문에 없습니다.
  • 다리 길이는 원문마다 1,036m · 841.5m · 840.9m로 달라 영상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 1917년 첫 다리 공사비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84만 3,000원과 『서울지명사전』 「총 공사비 250만원」(어느 공사인지 적지 않음)이 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의 120만 원은 1927~1929년 용산 쪽 다리 공사비입니다.
  • 쌓은 흙과 석축의 높이, 1995년 이름을 바꾼 고시 원문, 서울시 「노들섬의 역사」 글(지금은 열리지 않음)은 보지 못했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이곳과 정정 기록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