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692026년 10월 6일 공개

종로 큰길 밑으로 1호선이 달리는 건, 1971년 큰길을 위에서 파 내려가 넣었기 때문

서울 종로 큰길 밑을 달리는 지하철 1호선은 땅속에 굴을 뚫어 만든 지하철이 아닙니다. 1971년 서울시는 종로~청량리 구간을 터널식보다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 기간이 짧은 개착식, 곧 땅 위에서 아래로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지었습니다. 문화재를 흔드는 진동을 막은 방진벽과, 헐기 어려운 사옥을 비켜 간 급곡선도 그때 생겼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5일. 국가기록원(「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이달의 기록 · 주제별 설명), 서울기록원(소장기록 이야기 · 사진 해설), 서울특별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지하철 토목공사」 · 「지하철 주요건설공법」,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영상의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 노선 길이는 기관끼리 9.54 · 9.5 · 7.8 · 9.8킬로미터로 갈리고 차이를 설명한 원문이 없어, 영상은 서울기록원의 9.54킬로미터 한 값만 말했습니다.
  • 개착식 범위는 국가기록원이 「종로∼청량리 구간」, 서울시 표가 1호선 9.5킬로미터 전부로 적습니다. 영상은 개착식을 말할 때 국가기록원 범위를 그대로 썼습니다.
  • 「흙을 파낸 자리에 구조물을 짓고 도로를 다시 포장한다」는 서울시가 개착 공사 일반을 설명한 순서입니다. 1호선 종로 공사에 복공판을 덮었다는 기록과 종로 구간만의 굴착 깊이 · 폭은 기관 원문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 공사비는 기관끼리 330억 원 · 약 300억 원으로 다르고 범위도 달라 영상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 1970년 인구는 국가기록원 552만 명, 서울기록원 약 553만 명이고, 전차가 멈춘 날은 1968년 11월 29일 · 12월 1일로 갈립니다.
  •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가 낸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지』(1989) 원문은 보지 못했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이곳과 정정 기록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