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712026년 10월 7일 공개

살곶이다리 한쪽 끝만 콘크리트인 건, 1920년 홍수 뒤 넓어진 물길만큼 이어 붙였기 때문

서울 중랑천을 건너는 살곶이다리는 조선 전기 다리 가운데 가장 컸다는 돌다리인데, 지금은 한쪽 끝만 콘크리트입니다. 1913년 상판에 콘크리트를 덮었던 다리가 1920년 큰 홍수에 일부가 떠내려갔고, 1970년대에 고칠 때는 강폭이 넓어져 있어 동쪽을 콘크리트 다리로 이어 붙였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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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5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서울 살곶이 다리」의 설명과 연혁 표, 국가유산청 소식지 『국가유산사랑』 2018년 6월 글(성동구청 문화체육과 작성),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 살곶이다리」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 복구 해는 기관 원문끼리 1970년 · 1971년 · 1972년으로 갈려 영상은 「1970년대」로만 말합니다.
  • 홍수 해는 세 원문이 1920년으로 같고 설명문 하나만 「1920년대」입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라고 적은 기관 원문은 없습니다.
  • 「홍수에 떠내려간 바로 그쪽을 콘크리트로 이었다」는 원문에 없어, 영상은 「넓어진 동쪽 물길만큼 콘크리트로 이었다」까지만 말합니다.
  • 콘크리트로 연장한 길이(27m)와 돌기둥 전체 개수(64개 · 84개로 갈림)는 영상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 성동구 발굴조사 보고서와 조선왕조실록 원문은 직접 보지 못했고, 소식지 글이 옮긴 범위까지만 읽었습니다.
  • 사람 이름과 번지는 적지 않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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