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802026년 10월 8일 공개

경부고속도로 옥천 4킬로미터가 가장 늦게 이어진 건, 금강 다리와 당재터널을 함께 지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고, 1970년 6월 27일 한밤중에야 터널 포장이 이어졌기 때문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경부고속도로 건설 기록에서 서울~부산 428킬로미터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어진 곳은 대전공구의 옥천 4킬로미터였습니다. 금강을 건너는 다리와 소백산맥 허리 당재를 뚫는 터널을 함께 지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고, 1970년 5월 1일 당재터널 낙반 사고 뒤 6월 27일 한밤중에 양쪽에서 해 온 터널 포장이 이어지며 전 노선이 하나가 됐습니다. 7월 7일 개통 열흘 전이었습니다. 공사 중 숨진 77명 가운데 9명이 당재터널 공사 때였습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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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8일. 국가기록원 기록정보 콘텐츠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국가기록원 소장 기록물과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지』(1974) 등으로 만든 총설 · 연표 · 통계)의 「국토에 길을 놓다」 다섯 쪽(구간 · 서울 구간 · 대전공구 · 대전-대구 · 대구-부산)과 「고속도로 연표」(1968~1969년 · 1970년), 「통계」 쪽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영상의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 당재터널 사고는 연표에 1970년 5월 1일 낙반 사고 말고도 1969년 9월 9일 낙반 사고와 9월 17일 폭발 사고가 따로 있습니다. 영상은 개통 직전 해의 1970년 5월 1일 한 건만 말했습니다. 사고마다 피해 규모는 연표에 적혀 있지 않아 영상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낙반 사고가 13번 있었다」 · 「빨리 굳는 조강 시멘트를 썼다」 같은 이야기는 보도와 다른 영상에는 있지만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영상에 넣지 않았습니다.
  • 「낙반 사고 때문에 이 구간이 늦어졌다」는 원문에 없습니다. 원문이 적은 늦은 이유는 금강 교량과 당재 터널을 함께 지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구간」이라는 점이고, 영상도 그 범위에서만 말했습니다.
  • 대전~대구 구간 착공일은 같은 사이트 안에서 본문 「1969년 1월 4일 기공식」과 연표 · 구간 표 「1969년 1월 14일」로 다릅니다. 영상은 날짜 없이 「해를 넘겨서야」로만 말했습니다.
  • 당재터널 공사 순직자 수는 국가기록원이 9명으로 적었습니다. 일부 보도와 다른 채널에는 11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전체 77명은 위령탑에 이름이 새겨진 수이고, 집계 방식에 이견이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 당재터널의 지금 모습(옛 노선 · 쓰임)은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영상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인스타그램 · 틱톡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이곳과 정정 기록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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