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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의 장면
장면을 누르면 그 자리로 갑니다. 모든 장면은 AI(Google Veo)로 생성했고, 글자와 그래픽은 편집에서 얹었습니다. 이 장면의 프롬프트와 소스 클립은 제작 노트로 드립니다 →
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8일. 국가기록원 기록정보 콘텐츠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국가기록원 소장 기록물과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지』(1974) 등으로 만든 총설 · 연표 · 통계)의 「국토에 길을 놓다」 다섯 쪽(구간 · 서울 구간 · 대전공구 · 대전-대구 · 대구-부산)과 「고속도로 연표」(1968~1969년 · 1970년), 「통계」 쪽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영상의 모든 문장이 기관 원문으로 확인돼 보도로만 확인한 문장(△)은 없습니다.- 당재터널 사고는 연표에 1970년 5월 1일 낙반 사고 말고도 1969년 9월 9일 낙반 사고와 9월 17일 폭발 사고가 따로 있습니다. 영상은 개통 직전 해의 1970년 5월 1일 한 건만 말했습니다. 사고마다 피해 규모는 연표에 적혀 있지 않아 영상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낙반 사고가 13번 있었다」 · 「빨리 굳는 조강 시멘트를 썼다」 같은 이야기는 보도와 다른 영상에는 있지만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영상에 넣지 않았습니다.
- 「낙반 사고 때문에 이 구간이 늦어졌다」는 원문에 없습니다. 원문이 적은 늦은 이유는 금강 교량과 당재 터널을 함께 지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구간」이라는 점이고, 영상도 그 범위에서만 말했습니다.
- 대전~대구 구간 착공일은 같은 사이트 안에서 본문 「1969년 1월 4일 기공식」과 연표 · 구간 표 「1969년 1월 14일」로 다릅니다. 영상은 날짜 없이 「해를 넘겨서야」로만 말했습니다.
- 당재터널 공사 순직자 수는 국가기록원이 9명으로 적었습니다. 일부 보도와 다른 채널에는 11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전체 77명은 위령탑에 이름이 새겨진 수이고, 집계 방식에 이견이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 당재터널의 지금 모습(옛 노선 · 쓰임)은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영상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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