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뒷면건축의 뒷면No.0812026년 10월 8일 공개

종묘 정전이 열아홉 칸인 건, 모실 신주가 늘 때마다 1608년에 다시 세운 서쪽 열한 칸은 두고 동쪽 끝에 네 칸씩 덧붙였기 때문

서울 종묘 정전은 정면 열아홉 칸의 긴 사당입니다. 1395년 일곱 칸으로 처음 지었고, 명종 때 열한 칸으로 늘었다가 임진왜란에 불탄 뒤 1608년 같은 열한 칸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그 뒤 모실 신주가 늘자 이 서쪽 열한 칸은 그대로 두고 동쪽 끝에만 1726년과 1836년에 네 칸씩 덧붙여 지금의 열아홉 칸이 됐고, 지금도 12번째 칸부터는 기둥 위 익공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영상의 문장마다 어떤 기관 원문으로 확인했는지 붙여 두었습니다.

✔기관 원문과 대조 △원문을 못 봐 언론 보도로 확인 ○우리 해석·연결 문장 기호를 누르면 근거가 펼쳐지고, 문장을 누르면 그 자리부터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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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모음

대본에 쓴 근거와, 확인했지만 대본에서 뺀 주장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어떻게 확인했나

확인일 2026년 10월 8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의 「종묘 소개·역사」(본문과 「종묘 역사」 연표),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당상관에 오른 목수의 솜씨 국보 종묘 정전의 정교함」(2022년 1월)과 「종묘 정전 환안제, 왕들의 귀환」, 국가유산청 보도자료(2025년 3월 31일)의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칸마다 크기와 넓이는 똑같이 맞췄다」 한 문장만 기관 해설 원문을 찾지 못해 국가유산청 누리집에 실린 연구자 기고 칼럼(△)으로 확인했습니다.
  • 영상 앞부분의 「신주가 늘 때마다 동쪽 끝에 칸을 덧붙여 늘렸다」는 지금 남은 건물 기준입니다. 「서쪽 11칸을 그대로 두고 동쪽을 확장」은 1608년 이후 영조 · 헌종 때 증축을 말하고(근거 11), 1546년 명종 때 4칸을 어느 쪽에 늘렸는지는 원문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정면만 열아홉 칸」의 「정면만」은 기고 칼럼의 「정면에서 보이는 칸만 19칸」을 따른 표현이고, 기관 원문은 「현재의 정전 19칸」으로 적습니다(근거 6).
  • 「왕이 바뀌면 4대가 지난 신주가 생긴다」는 5묘제(근거 3)에서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기관 원문은 세종 때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했다고 적습니다.
  • 익공 모양이 다시 바뀌는 경계는 15칸째(월간 『국가유산사랑』)와 16번째 칸(기고 칼럼)으로 갈려 영상은 둘이 같은 「12번째 칸부터」까지만 말했습니다.
  • 정전 길이(약 101미터)와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은 기관 원문을 찾지 못해 쓰지 않았습니다(근거 19).
  • 새로 크게 짓지 않고 옆으로 늘린 「이유」를 적은 기관 원문은 없어 영상은 이유를 단정하지 않고, 대대로 정전에 둔 신주는 옮길 수 없었다는 제도(근거 5)와 영녕전도 칸을 늘렸다는 기록(근거 10)까지만 말합니다.

정정 기록

아직 정정한 것이 없습니다.

틀린 곳은 영상 댓글로인스타그램 · 틱톡 댓글로 남겨 주세요. 확인해서 사실이 틀렸으면 이곳과 정정 기록에 날짜와 함께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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